"에이~ 거짓말 하지 마" 라고 주변 사람들이 말하지만 그래도 나는 로커다. "그냥 한 때 로커였던 거 아냐?" 라고 말해도 나는 로커다. 내 몸에는 로커의 피가 흐르고 있다. 그걸 나는 안다. 나는 그렇게 록스피릿의 힘으로 살아간다. 전주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노래들이 있다. 잊고 있던 노래도 간주가 흐르면 내 몸이 기타 솔로를 기억한다. 과거가 현재의 나를 만드는 게 아니다. 그 둘은 서로 교류하고 동시에 살아있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로커일 수 있다.
고등학교 때 내 직업은 학생이 아니라 기타리스트였다. 학생의 본분을 지키기 보다는 밴드의 멤버로서 살았다. 남들이 야자에 시달릴 때 요구르트 안주에 소주를 마셨다. 모두 똑같은 교복을 입은 만원버스에 홀연히 메탈리카가 그려진 티에 기타를 메고 올라타 등교를 했던 기억도 있다. 현실을 외면하고 꿈에 빠져 살았다. 그 꿈은 행복했고 피가 끓었다. 그래도 나는 결국 학생이었다.
일찍 음악을 시작한 탓일까. 빠르게 꿈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실제로 음대에 진학해 음악인의 길을 걷는 친구도 있었다. 옆 학교 라이벌 밴드의 후배였던 이승기는 어느 날 TV에 나와 '내 여자라니까'를 불렀다. 나는 로커도 학생도 아무것도 아니었다. 영화 속에서나 보던 실패한 로커의 클리셰를 내가 겪고 있었다. 나는 밴드에 탈퇴선언을 던지고 또 다른 자아 찾기에 나섰다. 그리고 지금, 나는 더 이상 기타를 잡지도 록을 듣지도 않는다.
어릴 때 주말만 되면 눈치를 보다가 엄마 몰래 오락실에 가곤 했다. 그렇게 열심히 게임을 했던 이유는 엔딩을 보기 위해서였다. 주인공이 험난한 길을 지나 보스를 이기고 나면, 그가 원하는 것을 이루는 후일담이 잔잔하게 펼쳐진다. 나는 그 꿈같은 비일상의 세계가 좋았다. 현실에서도 나는 '엔딩'을 찾았다. 그러나 삶에 엔딩 같은 건 없었다. 끊임없이 더 힘든 세계가 나타날뿐이었다. 그래서 제2의 삶을 시작한 로커는 말한다. 꿈을 포기하고 현실에 굴복한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엔딩을 위해 살아간다고. 어린 로커의 엔딩이 나이 든 로커라면 너무 식상하다. 그건 록이 아니다.
부모님 말씀을 잘 듣고 학생다운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대학 후배들이 묻는다. 뭘 해야 할지, 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르겠다고. 그들 앞에서 선배랍시고 멋드러지게 한 마디 던지고 싶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자신의 꿈을 위해 도전하고 그것을 이뤄내는 것이 옳은 삶인지 모르겠다. 한비야처럼 '7급 공무원'이 꿈이라는 대학생을 때리며 정신차리고 더 큰 꿈을 꾸라는 어른이 될 생각도 없다. 그저 지금도 어디선가 불 꺼진 방에서 잠드신 부모님 몰래 기타 연습을 하고 있을 로커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나도 사실은 너랑 같은 로커라고.
at 2012/01/14 0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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